2011년 2월 20일

프랑스 레스토랑에 가보다.

결혼기념일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다가 프랑스 요리를 우아하게 먹어보기로 결정했다.  영화나 TV에서 보면 그렇게 우아해 보이고 뭔가 다른 세상 같아 보이던 그 프랑스 요리.  선택해야 할 것이 많은 서양음식 중에서도 그 다양성과 깊이로 최고로 평가받는 요리라지만 선뜻 겁부터 났다.  서양음식은 뭘 시킬라치면 뭘 그리도 물어보는 것이 많은지, 스테이크 시키면 어떻게 구울지 사이드는 뭘 먹을지 등등.  그런데 프랑스 요리는 메뉴판을 해독하는 것 부터가 불가능인지라 고민을 했다.

오케이.  이 기회에 한번 가보자. 아는 사람의 추천을 받아 집 근처의 산타나로(Santana Row)에 있는 Left Bank라는 프랑스 식당에 예약을 했다.  산타나로는 서울로 치면 압구정 정도 될까. 고급 브랜드들이 늘어선 쇼핑거리다.



식당가서 어버버 창피당할까봐 미리 메뉴 공부를 해두기로 했다. 식당 웹사이트에 메뉴가 올라와 있었다: Left Bank Dinner Menu

아래는 일부만 발췌했는데, 일단 음식명은 불어다.  음식명 아래에 자세한 설명이 있는 데 죄다 모르는 재료에 처음 봐서는 뭘 주겠다는 건지 당췌 모르겠다.  열심히 사전과 위키피디아 찾아가며 해독해보니 예를 들면 Raviolis Aux Cêpes메뉴는 그물 버섯이 들어간 라비올리, 파메산 크림 소스, 소테 버섯, 시금치와 블루 치즈라고 적혀있다. 이것 가지고는 무슨 맛의 음식일지 상상하기는 힘들다.


메뉴를 일차 해독한 다음에는 메인 코스에서 대략 어떤 종류로 먹을지를 결정하고 애피타이저와 샐러드 그리고 디저트에서 대충 먹을 것을 마음속으로 정해보았다. 메인코스는 정확히 무슨 음식인지는 모르나 음식의 주재료인 소고기, 닭고기, 오리고기, 연어 등은 알 수 있으므로 그것을 기준으로 대략 정했다.

특별한 드레스코드는 없었다. 식당에 들어서니 생각과 달리 일반적인 미국식 스테이크 레스토랑 분위기였다. 정통 프랑스 식당에 가 본적이 없으니 정확히 어떻게 다른지는 모르겠다. 이른 저녁 시간이었지만 손님들이 상당히 있었고 옆테이블에 방해받지 않고 좀 넓은 자리를 요구해 앉았다. 식사를 하면서 보니 메뉴만 프랑스 음식일 뿐 그냥 스테이크 하우스와 별 차이는 없는 것 같았다.

어쨌든 종업원에게 우리는 초보자니 추천하고 싶은 메뉴가 있냐고 물었다. 미리 마음에 어떤 것을 먹어볼까 생각은 했지만 물어보고 추천을 받는 것이 괜찮았던것 같다. 종업원은 우선 메인 코스부터 선택해보라고 하며 처음 온 사람들에게는 스테이크, 오리 요리 또는 양 장단지 요리를 추천한다고 한다. 애피타이저는 삶은 홍합 또는 가리비, 연어 무스가 괜찮단다. 종업원이 추천해 준 메뉴 중 메인 코스는 오리와 양 장단지 요리를 주문하고 애피타이저는 추천해 준대로 주문했다.

애피타이저인 가리비, 연어 무스와 홍합 요리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아내도 맛있다며 모두 먹었다. 한참 후에 메인 요리로 나온 오리 요리는 핏물이 흥건한 상태여서 바싹 익혀달라고 했다.  오리 요리는 나름 맛있었다. 그런데 양 장단지 요리는 먹을수록 고기 누린내 때문에 결국 많이 남기고 말았다. 먹는 내내 그냥 안전하게 스테이크를 시도할 걸 그랬다고 몇 번을 얘기했다. 양고기는 원래 냄새가 심하다는 얘기부터 미국 사람들한테서 고기 누린내가 난다는 얘기까지 여러 이야기를 했다.

디저트로 아이스크림과 초콜릿 빵을 먹기까지 아내와 둘이서 오랜만에 홀가분하게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정통 프랑스 식당이 아니어서 그럴수도 있지만, 프랑스 요리도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그냥 편하게 올 수 있는 그런 식당이었고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가족들도 몇 있었다. 메뉴를 고르는 것도 재료의 이름이나 특정한 음식의 이름(라비올리 같은)은 좀 공부를 해두고 식당의 종업원에게 잘 모르니 추천을 해 달라고 하면 그리 어렵지 않게 주문할 수 있는 것 같다.

생전 처음 프랑스 요리를 먹어본다고 걱정도 하고 설레기도 했는데 먹어보니까 한편으론 뭐 그닥 별거 없다는 생각도 하고, 가끔 이런곳에서 식사하는 것도 괜찮겠다 그런 생각도 했다. 중요한 것은 음식보다는 참 오랜만에 아이들 없이 아내와 단 둘이서만 저녁식사를 오붓하게 했다는 것이었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1 개의 댓글:

Oldman :

부럽습니다. 단 둘이서 식사하는 것이 아직 가능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