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방향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았던 때다. 3명의 팀원이 있었고 다른 나라에 있는 팀들과 함께하는 글로벌 프로젝트였다. 화상회의로 외국팀들과 주기적으로 회의를 했고 당연하게 영어가 회의와 이메일의 기본언어였다. 프로젝트 초기에 한국팀으로서는 이렇다할 업적이 없었고 해당 프로젝트에 대한 오너쉽(ownership)도 없었기 때문에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이며 어떻게 진행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잘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또한 다른 나라 팀이 하는 일에 대해서도 잘 이해해야만 했다. 영어로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최우선으로 필요한 때였다.
영어에 대한 부담감이 상당히 많았고 팀원들에게도 다른 나라 팀들과 대화가 잘 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었다. 시간을 할애하여 영어회화 수업을 듣고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적어도 직장에 있을 동안에는 영어로만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영어로만 생활하면 부담은 크지만 영어실력은 크게 늘어나리라고 생각했고, 내가 영어만 쓰면 다른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영어로 대화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갑자기 영어로만 대화하면 이상하니까 사람들에게 내가 직장에서 한국말을 사용하는 것을 발견하고 지적하면 건당 천원씩을 벌금으로 주겠다고 했다. 이 결단은 한국내 사무실의 전직원들에게 소문이 퍼졌고 건투를 비는 사람들의 호응이 컸다.
그런데 영어로만 대화하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회의를 하게되면 모국어로도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이 이해하도록 표현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학교에서 회사에서 끊임없이 표현하는 능력을 훈련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것을 제한된 영어 어휘와 되지 않는 문장으로 번역하여 이야기한다고 생각해보라. 단 한마디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몇 번 식은 땀을 흘리며 좌절한 후로 더더욱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설령 다른 사람들도 동조하여 영어로 이야기를 시작하더라도 그리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영어가 잘 안되는 한국사람끼리 영어로 대화하면 대화중에 사용하는 어휘와 문장의 난이도는 두 사람의 교집합 정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내가 열심히 공부해서 알게된 새로운 단어와 멋진 표현을 쓰면 상대방이 알아듣지 못하고 상대방도 마찬가지로 내가 아는 어휘내에서 결국 이야기가 흘러가게 된다.
부쩍 조용해진(?) 나에게 다른 사람들은 웃으면서 가볍게 놀려댔다. 그러나 몇 일도 안되어서 포기하기도 참 그렇지 않은가. 그것을 한 분기동안 했다. 회의는 포인트가 없어졌고 회의시간이 건설적인 시간이 아니라 모두에게 짜증나는 시간이 되었다. 내부에서 먼저 동의가 되지 않은 내용을 가지고 외국팀하고 이야기하다보니 나중에 되려 팀원들이 반대하기도 했다. 또한, 외국팀과 얘기된 내용이 팀원들과 잘 공유가 안되다보니 일이 잘 굴러갈 수가 없었다. 그 분기동안 프로젝트의 진도는 물론 팀원 모두의 퍼포먼스가 떨어졌다. 나는 모든 문제의 근원이 되어 있었다. 몇 년전 일이고 나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데 지금도 가끔 그 얘기가 나온다. 그 일로 내가 뼈저리게 느낀것이 있다.
소통은 안에서 밖으로, 그리고 가까운 곳에서 먼곳으로 흘러간다는 것.
나 그리고 나와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제대로 소통하지 못한 내용은 그 이상 더 먼 곳에 있는 사람들까지 끌어들이지 못한다는 것. 우리 팀에서 가장 잘 통하는 한국어로 결론을 내고 결과를 만들어 그 다음 단계의 외국 사람들에게 설명했다면 이야기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한 분기동안의 프로젝트 실패의 원인은 영어자체가 아니라 내가 동료들과 효과적이지 않는 언어로 소통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작은 영역에서 실패한 결과는 더 큰 영역에서 받아들여질 수가 없다. 만일 더 큰 영역에서 받아들여진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일을 같이 할 동료들이 동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이 좋게 진행될리는 만무하다.
영어는 소통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미래가 아닌 '현재', 그리고 '밖'이 아닌 내가 소통하는 '안'에서 방해가 된다면 영어를 버리고, 쉽고 익숙한 한국어로 이야기해야 한다. 이 단순한 이치를 깨닫는 데 너무 비싼 수업료를 치뤄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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